(눅 11:1-13)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의 기도 (눅 11:1-13)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념하는 절기인데요. 부활절이 되기 전까지 주일 여섯 번을 제외하고, 40일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40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신 사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 기간에, 누가복음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11장입니다. 1절입니다.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기도를 마쳤는데, 제자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요청에 따라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바로 한 비유를 말씀 하시는데요. 어떤 사람에게 갑자기 밤에 친구 한명이 찾아옵니다. 그 친구는 여행 중에 지치고 매우 굶주린 상태입니다. 그러나 집에는 준비된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찾아가서 떡을 세 덩어리만 꾸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눅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안에서 하는 대답을 잘 보세요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은 다 누워 있다.” 이 상황을 한번 머리속에 상상으로 그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때 당시 가옥의 구조가 우리가 사는 집처럼 거실도 있고 방도 있고 주방도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닙니다. 한 방에 모두 함께 잠을 잡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이들도 많이 나았어요. 지금은 한,둘, - 저희 아버지 세대에만 해도 8남매가 셨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았어요. 방안에 그 여러 명의 아이들이 좌악 붙어서 자고 있고, 아내도 자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친구에게 빵을 내어 주려면, 그 아이들을 틈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면, 아이들을 깨워야죠. 발좀 치워 봐 좀 비켜 봐 한바탕 난리를 쳐야 빵을 내어 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서 빵을 내어 주는 것은 주인을 심히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괴게 하지 말라 문이 닫혔다. 아이들이 자금 나와함께 누워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 하실 때, 여기서 끝내지 않습니다. 그 뒤에 말이 중요합니다. 7절 마지막을 보세요.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말씀은 끝까지 잘 들어야합니다. 무슨 말이지요? 들어준다는 말입니까? 안들어 준다는 말입니까?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죠. 8절입니다.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간청함으로 인하여 일어나서 그 요구대로 들어 준다고 말씀 하십니다. 오늘 주제는 간청하는 기도 입니다. 포기 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들어 주시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그 9절 10절에 보시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 하십니다. (눅 11:9-10)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강조 하시는데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약속 하시면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셨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 존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존 은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을 구경하다가 이상하게 생긴 건물 하나를 발견합니다. 존은 베드로에게 그 건물 안을 구경하고 싶다고 부탁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많은 선물 보따리 들이 있는데,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존은 거기에서 자신의 이름이 씌여진 보따리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열어 보았습니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기 원하 셨던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은 전혀 구하지 않은 것이죠. 그것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구하면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책의 저자가 지어낸 이야기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일들이 똑같은 그림은 아니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두신 선물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 해 놓으셨기에, 구하면 주셨을 텐데,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면 얼마나 아까워요? 기도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라고 했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는 구해야 주시는 겁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데, 그냥 주시면 안되나? 약속하셨으니 그냥 주시면 될 거 아닌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이루어 질 텐데 뭐 하러 기도하나? 생각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우리가 기도함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시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뵈옵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비유를 다시 볼까요? (눅 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문이 이미 닫혔습니다. 보통 문이 닫혔으면 포기 하게 되죠. 밤에 식당을 갔는데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면 아 끝났구나 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도 두드리라고 말씀 하세요. 여러분 내 앞에 문이 닫혔더라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이 너무 커서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앞에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과연 문이 열릴까? 굳게 닫혀 버린 문을 바라보면서 과연 두드린다고 열릴까? 하고 기도를 포기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두드리라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말씀 하실 때까지는 끝난 게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닫혀 있더라도, 두드려야 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여러분 문이 닫혀 있다고 포기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왜 포기 합니까? 두드리라고 했으니 두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두드리는 것을 예수님은 간청하는 것이라고 말슴 하십니다. 닫혀있고, 막혀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간청 하는 것입니다. (눅 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그 간청함으로 인하여서 일어나서 그 요구 주지 않겠냐? 간청하면 일어 나서 요구대로 들어 준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 하지 말고, 간청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아! 하나님은 무조건 간청 하면 들어 주시는 구나. 그냥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다 주시는 구나“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한 구절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말씀을 보아야합니다.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한 밤중에 친구 집에 가서 간청 하는 사람은, 떡 세덩어리를 꾸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떡 세덩어리를 구하는데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도 지금 친구가 여행중에 찾아 왔는데 그 친구가 너무 지쳐 있는 겁니다. 여행중에 먹지 못해서 굶주려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대접하기 위한 사랑의 떡을 구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사랑을 구한 것이죠. 기도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으로 구해야 합니다. 간청을 하는데 그 렇게 간청하게 되는 동기가 중요하죠. 이 사람은 지금 굶어서 허기져 있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그 친구를 위해서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이 간청하다 라는 뜻이 전에 수요예배시간에 말씀 드렸는데 기억 나십니까? 간청하다라는 단어가, 헬 ‘아나이데이아’ 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부끄러움이 없음, 뻔뻔스러움, 이라는 뜻입니다. 친구의 집에 밤에 찾아간 사람은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친구 집에 밤중에 찾아가서, 그 집 아이들도 다 자고 있는데, 밥좀 달라, 그 집안 식구들 다 깨우고 민폐를 끼치는데, 부끄럽고, 뻔뻔스러운 일이지요. 이 사람이 이렇게 뻔뻔해지게 된 동기가 무엇이죠? 사랑입니다. 자신의 집에 찾아 와서 지금 굶주려 쓰러져 있는 친구를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웃 사랑에 대한 이런 열망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타인을 위한 기도에 위력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부끄러움도 없고 뻔뻔해 질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뻔뻔한 기도, 아아이 데이아 – 간청하는 기도를 할 때 그 간청함으로 인하여 요구대로 들어주십니다. 여러분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저는 온누리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우리가 서로 서로를 위해 간청 해야합니다. 코로나 19상황에 힘들지 않은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힘들어요. 코라나19로 인해서 자살율이 높아졌다고합니다. 하루에 코로나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보다 자살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외롭고 갈급합니다. 여행중에 집에 찾아온 사람처럼 굶주리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청하는 온누리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서 정말 뻔뻔할 정도로 간청함으로 그 요구대로 응답을 받는 온누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도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관계입니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뻔뻔하게 막 찾아가서, 밤중에 찾아가서 두드리고, 떡을 달라고 하고, 그 집에 아이들 다 깨우고 뻔뻔할 수 있어요? 뻔뻔해지면, 간청하려면, 먼저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지금 친구 관계니까 뻔뻔한 겁니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니까 그렇게 해도 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친구 관계보다 더 뻔뻔한 관계가 어떤 관계 인지 아세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 하시기전에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첫 문장이 뭡니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아버지와의 관계는 친구관계 보다 더 가까운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이 친구관계의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앞에서도 아버지의 관계를 말씀 하셨고, 비유를 마치고 뒤에서도 아버지의 관계를 말씀 하셨습니다. 11절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냐?” 아버지의 관계를 말씀 하셨습니다. 앞에 아버지관계 중간에 친구관계 뒤에 아버지 관계라는 구조를 볼 수 있는데 이런 문단의 구조를 수미상관 구조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11장 1-13절 까지 말씀을 통해서 관계를 강조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강조 하십니다. 뻔뻔해도 되는 관계를 강조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관계는 바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몇일 전에 저희 아이가, 제 옷을 딱 입고 나오더니, “아빠이거 제가 입을 께요. 하고, 입고 나가더라고요.” 얼마나 뻔뻔해요. 그런데 그렇게 뻔뻔한게 보기에 나쁘지 않아요. 그 아이가 제 옷을 입으니까.. 왠지 젊을 때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제 옷을 가지고, 목사님 이거 제가 입을께요 하고 뻔뻔하게 하실분이 계신가요? 저도 그런 관계가 까지 친해지길 바랍니다만, 그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가장 친밀한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그 관계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실 것을 준비해 놓고 구하라고 하시는 것도,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관계를 열어 주셨잖아요. 지금 사순절 기간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그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 해하고 따라갑시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있는 그 관계를 완성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고 했는데, 이 권세는 내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권세, 하나님께 뻔뻔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자녀의 권세입니다. 이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뻔뻔하게 나아갈수 있는 온누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녀의 권세를 가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두신 것이 있는데, 마지막 (눅11: 11-13)에 보면, 또 하나의 비유가 나오죠.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여기서 생선이나 알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면에 뱀이나 전갈은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가 아빠 생선을 주세요. 오늘 저녁은 반찬으로 생선을 먹고 싶어요 하는데 밥상에 뱀이 올라와 있으면 정말 미친 아빠입니다. 또 아이가 간식으로 삶은 달걀을 달라고 했는데 전갈을 주면서 이거 먹어라고 하는 아빠는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자라오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압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 해도 , 자식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줍니다. 하물며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여기서 조금 짜증이 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지금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인데 성령을 주신다고, 지금 필요한 것은 떡인데, 생선인데, 달걀인데 성령을 주신다고, 좋은 것을 달라고 했는데 그 좋은 것이 성령이라고 실망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에 여러분 실망하지 마세요. 성령안에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의 선물도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도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도 있습니다. 성령의 지혜도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도를 증거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기적과 표적도 있습니다. 병고침, 귀신 떠남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면 그 지혜로 필요한 재물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지혜로 막힌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로, 인격으로 인간 관계도 잘 할수 있습니다. 성령안에 모든 것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인 성령을 주십니다. 13절 후반절에서“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결론입니다. 오늘 눅 11장 1-13절을 1절부터 보시면, 일용할 양식도 구하고, 떡도 구하고, 생선도 구하고 알도 구하라고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하셨쬬. 여러분 여러분의 필요를 구하십시오. 건강이 필요하신 분은 건강을 구하십시오. 물질이 필요하신 분은 물질을 구하세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좋은 것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해 주시는 데,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며 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구하십시오. 구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고,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간절히 기도 하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경험을 비추어 보니까요. 교회에 처음 나온분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잘 들어 주시는 것 같아요. 새가족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잘 들어 주세요. 왜 그럴까요? 들어 주지 않으면 안 나올까 봐! 하나님 안 믿을 까봐요... 그런데 이제 믿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다 보면은 단계라는 게 있습니다. 그 단계에 접어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빨리 들어 주지 않으실 때가 있어요. 왜 기도를 빨리 들어 주지 않을까요? 이제 기도 응답을 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 렇게 기도하는 동안 믿음이 자라게 하십니다. 오랫동안 간청하면서 포기 하지 않고 기도하는 기간은 믿음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자라는 시간을 통해서 성령을 내안에 충만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게 하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오래 기다릴수록 우리에게는 유익한 것입니다. 기도하자마자 바로 웅답 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응답 되지 않고 오래 기도할수록 더 유익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시고, 충만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온누리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구하십시오. 받을 것입니다. 간청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구하십시오. 찾으십시오. 분명이 있습니다. 나에게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찾는 자는 찾아낼 것입니다. 두드리십시오. 문이 닫혀 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하실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가장 좋은 것을 받는 온누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성령을 구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모든 상황을 견디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한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확증 시켜 주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순절 절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길, 하나님께 가는 길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응답 응답받는 온누리에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