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 주시는 성령 (행 2:12-18) 지난주일 오순절 성령의 강림 사건을 살펴 보았습니다. 3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 봤죠. 첫 번째 키워드 바람은 무엇이었나요? 예수님의 생명의 숨결입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이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 생기는 생명의 숨결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 예수님이 생명의 숨결 불어 넣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은 흙덩어리가 살아나는 것처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역사입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불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불이 임하여 그곳에 모인 성도들이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과 불신과 죄와 더러움을 태우고 내면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이 임하여,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언어입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각 나라의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소통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고 이웃들과 소통하게 하는 역사입니다. 이렇게, 바람으로 생동감이 넘치고, 불로 변화가 일어나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담대하게 말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가? 행 2장 7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라는 것은 저들이 배우지도 못하고 출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고기나 잡던 사람들이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그런 갈리리 사람들이 지금 성령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여러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니까 다 신기하게 여기게 된 것이죠. 사람들이 놀라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성령의 역사를 보고 다 놀라고 당황하며 어떻게 된 일이냐 큰 소동이 일어난 겁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주변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 신기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 사람은 갈릴리 사람인데, 아무 존재감도 없고, 별 볼일 없던 사람인데? 지금 말도 잘하고, 언어가 달라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도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나와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정말 내향적이고 소극적이고 소심하고 겁도 많아요. 저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합니다. 어떻게 제가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내가 할수 없는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놀라고, 주변에서 놀라고, 신기해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런 이것이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모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까?조롱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그것을 모르면, 조롱하면서 비방하는 겁니다. 행 2장 13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지금 술 마시고 술에 취해서 두서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비방하고 조롱을 합니다. 그런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서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 합니다. 행 2장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가 11명의 사도들과 함께서서, 그것도 대표로 앞에서서, 소리 높여서. 아주 큰 소리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는 계속해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담대하게 말합니다. 행 2장 15절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시간이 제 삼시다. 유대시간으로 삼시는 아침 9시입니다. 지금 아침 9시인데, 아침부터 이 시간에 술을 마시고 횡설 수설 할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라는 것이지요. 취한 것이 아니다. 요엘 선지가가 말씀하셨다. 행 2장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 합니다. 그 말씀이 17-18절입니다. 행 2장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베드로는 지금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성령을 부어 주셔서 너희들이 보기에는 신기하고, 놀라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한 겁니다. 이것 또한 성령의 역사죠. 베드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닌데, 구약 성경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씀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말씀으로 풀어 가게 하십니다. 성령은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나게 하셔서. 내 삶을 해석하고, 내 인생을 이끌어 갑니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성령은 지금까지 쉬지 않으시고 교회의 역사를 이루셨고, 우리 온누리교회도, 이끌어 가십니다. 말씀 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들의 삶을 해석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말씀으로 해석되어 지길 축복합니다.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교 하는데, 요엘서의 말씀을 찾아보면 이 본문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요엘서2장 28절에서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라고 기록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뭐라고 말씀 합니까? 17절에 중간에.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요엘 선지자는 그 후에라고 했고, 베드로는 그 후에 라는 말씀을 말세에라고 바꾸어서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또한 성령의 말하게 하심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한 그 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말세에 라고 바꾸어서 설교 합니다. 말세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사건과 예수님의 재림 사이의 모든 날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세는 언제 입니까? 지금이 말세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 하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말세의 시대는 성령을 어떻게 부어 주시는가? 행 2장 17절 ...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 그랬죠.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의 시대. 지금 말세의 시대는,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는 겁니다. 자녀들, 젊은이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 말세의 시대 이전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는 성령의 임재가 없었나요?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성령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와 말세의 시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때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시적으로 성령의 부으심이 있었습니다. 왕이나 선지자들이나 특별히 몇몇 사람에게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현재의 말세시대에는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십니다 모든 육체의 부어 주시는데 그 대상을 보십시오 행 2장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어린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젊은 청소년 청년들과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행 2장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남종과 여종은 종의 신분을 가지고 살던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 그런 이방인들 남종들과 여종들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휘장이 찢어지고 모든 문이 열리게 된 것이죠.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목사에게만 부어 주시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부어 주시는게 아니고, 우리 교회 학교 어린아이들에게도 부어 주십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성령이 부어 지면, 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봅니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꿈을 꾸게 됩니다. 남녀노소 신분과 모든 계층을 뛰어넘어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 그리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부어 준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어요. 요엘서에서도 부어줄 것을 예언하고 있고, 오늘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도 부어 주시니 라고 했고, 18절에서도 부어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부어준다 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엑케오 라는 단어 인데, 미래 능동 동사입니다. 성령의 부어 주시는 역사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서 한번 만 부어주시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계속 부어 주시는 겁니다. 성령은 오순절에만 부어 주시는게 아니고, 계속 부어 주십니다. 언제까지요? 예수님 다시 오실때까지 , 말세의 시대에 성령을 계속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이해 해야합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이해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왜 이렇게 설교가 어렵나? 아! 머리 아프겠다 하지 마시고 한번 잘 들어 보세요. 쉽게 설명하려고, 많이 준비 했습니다. 여기 컵이 있습니다. 이 컵에 불을 부어 보겠습니다. 이 컵은 이제 물이 부어 졌죠? 물이 들어 있습니다. 물이 부어 지기 이전에는 빈 컵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부어 짐으로 물이 들어 있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컵이 됐죠? 그리고 이 컵에 계속 물이 부어 지면, 어떻게 될까요? 넘쳐흐르게 되죠.. 처음에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은 성령 세례입니다. 그리고 계속 부어서 넘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은 다른 것입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이 동시에 일어 날수도 있고, 순차적으로 일어 날수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어주시는 세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 세례를 받은 겁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만나서 이렇게 묻습니다. (행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묻죠.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세례를 받았느냐고 묻는 겁니다. 성령 세례는 믿을 때 받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고 고백했다는 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고전 12:3)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았기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로 예수님을 믿고 주로 고백하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시죠. 예수님의 주인 되심을 믿으시죠? 그 믿음은 내 노력이 아니다. 성령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오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상태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지요? 넘쳐야 합니다. 이 컵에 처음 물이 부어 졌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 있으면 흘러넘침 역사는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일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상태로 그대로 유지 할 수는 있습니다 물이 들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삶으로 나의 구원이 유지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흘러 넘치지는 않는 것이지요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그냥 이렇게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가야 되겠다.” 오늘 날 그런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이 컵에 물이 엎질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면서 그냥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겠지요. 그러나 그 삶은 흘러넘치지는 않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그냥 신앙을 유지하고,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냥 겨우 구원 받는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면류관을 받는 구원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이 계속 부어 짐으로 흘러넘치는 상태 그런 상태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새로운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계시는 그 성령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내 인생을 완전히 주관하시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 충만은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는 시작이고, 성령 충만은 계속입니다. 성령 세례는 씨앗이고, 성령 충만은 성장입니다. 성령 세례는 문을 여는것 , 성령 충만은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풍성함입니다. 성령 세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이고, 신앙 생활에 활기도 없고,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넘치지 않으면 내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나를 주장하죠. 그래서 때로는 내 뜻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세례도 받아야 하고, 성령의 충만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흘러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 삶에, 성령 충만함으로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나만 구원 받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흘러 넘쳐서 여러분의 가정으로 여러분의 삶의 현장으로 흘러넘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조금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오랬 동안 타다가 이제 새 자동차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옛날에 타던 자동차는 폐차장으로 가고, 새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새 차가 생겼다고 차가 달릴수 있습니까? 뭐가 있어야죠? 기름이 있어야죠. 기름이 부어져야죠. 멀리가려면 많은 기름이 부어져야합니다. 무거운 짐을 실으려면 많은 기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계속 부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바꾸는 것을 성령 세례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성령 세례는 예수님 믿고 새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기름을 붓는 것은 성령의 충만이라고 비유 할수 있어요. 새 사람이 되어서 달려가려면, 성령의 충만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새 자동차를 사 놓고, 맨날 주차장에 주차만 시켜 놓고 “나 차샀다. 나 새 차샀다. 이전의 차는 폐차장으로 보냈다.” 자랑만 합니까?그냥 세워두기만 하면 얼마나 아까워죠? 달려야죠. 기름을 넣고달려 야죠. 달릴 수 있는데, 멋지게 달릴 수 있는데, 주차장에만 세워 두면 정말 아깝잖아요.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는 예수님 믿는다. 나는 이제 구원 받았다.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얼마나 아깝나요? 성령의 충만이 일어나면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는데, 신나게 달려 갈수 있는데, 그냥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고 머물러 있으면 인생이 얼마나 아깝습니까? 여러분 자신감을 갖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을 술취함과 비교했습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취함과 성령의 충만을 한 문장에 사용합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한 것이 비슷해요. 술 취한 사람을 보면 용감합니다. 몇 년 전에 뉴스에 나왔는데요. 여대생 두 명이, 경주 첨성대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 용감하죠. 그 울타리를 넘어가서 첨성대 중간의 창문 같은 곳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찰에서 붙잡았어요. 조사해 보니까 둘이서 술을 마시고 거기 올라가서 사진 찍고 노래를 불렀답니다. 아무튼 술에 취하면 용감해 집니다. 아마도 갑자기 용감해진 베드로와 그 제자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술 취한 것 같다는 조롱을 겁니다. 술에 취하면 목소리가 커집니다. 안하던 말을 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술먹고 안하던 기도를 하러 교회 나오기도 합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취함과 충만이라는 단어를 같이사용합니다. 여러분, 취하는게 뭡니까? 술을 마시면 술에 있는 알콜이 그 사람의 뇌를 지배 하게 되죠? 그래서 용감하게 되고, 첨성대 그 높은 곳을 기어 올라 가고, 세상을 다 이길 것같습니다. 그건 뇌가 알콜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술에 취했다고하는데요. 그 취하다 라는 단어와 충만이라는 단어가 같은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께서 내 뇌를 지배하셔서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성령이 가득 차서 너를 주관 하시도록 하라. 뜻이죠. 성령께서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을 온전히 이끌어 가시도록 삶의 주권을 내어드리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마치 술을 마시면, 알콜이 뇌를 지배하고 취하듯이 성령의 충만함을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다스려 주시는 것이 충만한 삶입니다. 그런데,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을 충만이 확연히 다른 것이 있는데요. 술취함 – 타락한 죄의 본성에 굴복 하는 것이고. 성령 충만 – 죄에서 멀어지고, 하나님께 복종 하는 것입니다. 다른 거예요. 그래서 술에 완전이 잔뜩 취하면 큰 사고를 쳐요. 사건사고가 끝이지 않고 넘쳐 흘러요.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큰 일 을 하게 됩니다. 큰 일이 넘쳐 흐르는 데 큰 일은 무엇입니까?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큰 일 입니다. 구원의 일보다 큰일은 없습니다. 교회는 큰 일을 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는 일은 큰 일입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나를 유명하게 만들려고 오신 것도 아니고, 나를 성공 시켜 주려고 오신 분도 아니고, 성령이 오신 이유는 가장 귀한신 이름, 존귀한 이름 그 큰 이름,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 겁니다. 성령이 오신 목적은 구원입니다. 행 2장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이름을 부르는 자.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이루십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 구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 구원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집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하여 풍성한 구원의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마치 운전할 때, 운전석을 내 어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갈수도 있습니다. 내가 뜻하는 바가 아니고 다른 뜻일 수 있어요. 성령충만은 그 모든 것을 맡기는 겁니다. 결과까지도 맡기는 겁니다. 그러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최고는 아니라도, 최선의 것으로 가게 하십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그 목적지를 신뢰 하십니까? 신뢰 한다면 성령께 맡길 수 있죠.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런데 신뢰 하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고,“성령님 그냥 앉아만 계십시오. 제가 알아서 잘 가겠습니다.” 성령께서 말씀 하시면, “그냥 조용히 계세요.. 나좀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내맘대로 하게 놔두세요.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게 놔두세요.”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다가 사고 나면, “이것 좀 처리해 주세요.” 하죠. 지금 성령이 함께 계시지만, 운전대를 맞기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컵에 물이 담겨 있는 것처럼 성령세례는 받아서 성령이 함께 하시지만, 충만한 상태는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님께 운전대를 맡겨 보십시오. 성령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 하시고,예수님 말씀 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큰 일을 이루는 온누리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